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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My Favorite Art

<루앙대성당 연작>클로드 모네_Claude Monet

by 클래스는 영원하다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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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의 대표작가 모네의 루앙성당 시리즈는 30여점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실 모네는 해돋이라는 작품으로 인상주의의 시초작가로 유명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따라가다보면 수많은 작품을 하였고 실험가 및 연구자적 기질을 발휘한다. 세잔 이전에 가히 현대미술을 태동시킨 장본인 중 한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나는 그의 말년 지베르니 시절의 수련 대작을 보면서 그의 야망과 열혈 페인팅에 경외감을 느꼈다. 언젠가 그 작품들도 소개해보겠지만, 오늘은 루앙 성당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베르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프랑스의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있던 지명)의 작은 지역의 지명이다. 루앙성당이 위치한 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모네의 후기작들이 탄생한 아지트이다. 수련을 포함한 꽃들과 정원을 가꾸며 작품활동을 이어간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43년간 살았다. 모네가 1826년생인 것을 감안하면 작고할 1926년까지 당시로써는 장수하며 작업에 몰두한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하고 싶은 작품을 해서 그런 것일까?ˆˆ

인터넷에 모아놓은 루앙 대성당 연작 29점

루앙성당을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았을 때, 아 미술책에서 본 그 작품! 하고 신기해했다. 물론 그의 터치는 살아있었고 두텁기도 얇기도 한 물감의 지층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느날 모네의 화집을 보다가 루앙성당이 20점 정도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모네는 정말 집요하게 빛을 파고 들고 있었다. 나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당시 태어난 카메라와 싸웠다고 생각한다. 외형을 기록하는 면에서 회화는 카메라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이미 회화는 다른 길로 가고있었고, 그것은 미술을 다양한 가능성으로 이끌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인상주의는 그 전 시기의 유파로 보이는 사실주의에서 계승되어 마네를 필두로 사실주의의 끈을 지니고 있었다. 루앙 대성당을 30여점 그린 모네는 루앙 성당 자체를 그리기도 했지만 그 날의 빛, 빛의 잔영, 공기, 대기, 시간, 시간의 축적, 눈의 움직임을 모두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본다. 특히 빛의 변화에 대한 예민한 포착에 의한 30여점의 집요한 광기의 표현은 경이롭다. 나는 화집의 루앙 대성당을 본 이후 인터넷 서핑에서 루앙 시리즈가 30여점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모네가 루앙 성당을 그리기 위해 특히 1892년 2월의 첫 두 작품은 albane 궁정이라는 루앙성당 앞 야외에서 그렸다고 알려지지만, 노르망디의 겨울은 야외작품을 하기에는 제한이 많았다고 한다. 하여 1점은 완성하였지만 2번째 작품은 미완성에 그친것으로 평가된다. 대작의 시발점은 albane 궁정에서 바라본 루앙성당 정면의 포털을 브라운 톤으로 그렸다. <아래 도판 시리즈중 1번째>이 작품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다. 첫 두 작품은 건너편 가게 (le grand fabrique)를 소유한 루베씨가 제공한 방에서 제작 되었다.

그리고 지베르니로 돌아와 9개의 루앙 연작을 하였다. 하지만 모네는 불만에 가득찼다고 한다.

모네 자신은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주로 전날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매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 결국에는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모네는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것, 즉 빛이 끊임없이 변하는 성질과 극도의 미묘함으로 인해 거의 포착할 수 없는 것임을 인지했다. 그러나 그는 장면의 본질을 빠르게 포착한 다음 장면의 기억과 관련된 스케치를 사용하여 나중에 완성하는 천재적 능력을 지녔다. 이 그림을 위해 그는 질감이 풍부한 페인트의 두꺼운 층을 사용하여 주제의 복잡한 특성을 표현했다.

루베씨의 빈방에서 모네는 9개의 다음 작품들을 그렸다. 이곳에서는 루앙성당의 정면이 아닌 원근이 들어간 시점으로 바뀌었다.
오후 초부터 직사광선을 받아 다른 9개의 작품을 그린다. 모네는 오후 1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이 작품들을 그렸을 것이다. 모네는 엄청난 워커홀릭으로 보인다.(예술가에 대한 천재적 환상이 사회에 만연하여 그렇지 사실 모든 위대한 화가는 워커홀릭이다.)

이에 다시 루앙으로 (현재 관광안내소가 있는)이사하여 11개의 그림을 그렸다.

루앙의 마지막 연작은 6점으로 구성되었다. 1893년에 Monsieur Mauquit의 Caprice 매장위치에서 그린 것이라고 한다.(현재 49대로 다리) 1893년 2월부터 4월까지 두달동안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그곳은 동시에 여러개의 캔버스를 그릴 만큼 충분히 넓었다. 루앙연작을 하기 위해 모네는 최소 4곳이상을 임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그는 주변에 캔버스를 설치하고 빛과 기후에 따라 캔버스를 바꿔가며 작업하였다. 모네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시리즈가 가장 성취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지베르니에서 1894년까지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1895년에 그는 시리즈에서 약 20개의 그림을 선택하여 파리 딜러의 갤러리에 전시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이미 8점의 그림을 접수 받았기 때문에 판매는 잘 진행되고 있다. Camille Pissarro와 Paul Cézanne과 같은 화가 친구들이 전시회를 방문하여 시리즈를 칭찬한다. 이 시리즈는 적절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보인다. 실제로 1890년대 초에 프랑스는 가톨릭에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종교적 중요성 외에도 고딕 양식의 루앙 대성당은 최고의 프랑스 건축 역사와 문화를 대표한다.
이 시리즈는 전체 시리즈를 전시하기 위해 국가에서 전체 시리즈를 구매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뉘어져 있다. .<ystory.fr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함>

모네가 보여준 실험적인 이 페인팅 연작은 현대미술의 인문학적 고찰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연의 조건을 변수로 여러 화면을 그렸으며 루앙 대성당 자체를 너머 빛과 시간, 대기, 시점, 시각 관점 등을 표현해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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