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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클라스/My Favorite Art

<Pie Fight Study>애드리안 게니 Adrian Ghenie

by 클래스는 영원하다 2022.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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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붓질 어두운 톤 속의 선명한 채도의 색감 인물의 얼굴 이목구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포트레이트 모든 것들이 어둡고 암울하기만 하다. 루마니아의 화가 아드리안 게니의 연작들 중 Pie Fight Study 시리즈를 보자. 아드리안 게니는 냉전시대가 지나고 나서도 시가적으로 맞물린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쿠 정권하에 유년시절을 보내며 억압과 가난으로 고난을 겪었던 루마니아 인들을 대변하듯이 정치적인 인물을 풍자하고 조롱하며 특유의 어둡고 강렬한 표현형식으로 미술세계에 등장했다. 그중 인상적인 파이싸움 연작들을 보면 인물의 얼굴이 파이빵으로 덮혀있다. 이러한 파이를 던지는 액션은 서구사회에서 정치인들에게 조롱과 야유의 형태로 드러나왔다. 일부 풍자만화나 영화등에서도 파이를 던지는 행위를 볼 수 있다. 혹은 축하의 의미로 혹은 심한 장난의 행위로 케이크나 피자등을 얼굴에 던지기도 한다.

나는 게니의 그림을 보고 처음 느꼈던 강렬한 표현에 매료되었다. 어둠의 미학을 밝고 경쾌한 미학보다 살짝 더 높게 점수 주는 나는 게니의 그림은 뉴밀레니엄 회화라고 생각했다. 최근 미술계를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을 겪고 팝아트와 얽힌 저물어가는 신자유주의 물결의 미술시기를 보내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미술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본다면 지금이 가장 민주적인 미술시기가 아닌가싶다. 이런흐름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장점인 진정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부분이라서 긍정적이다. 어떤 단계를 모두 아우르고 그것을 넘어서는 차원의 폭발적인 혁명적 예술이 나와야 미술의 수준이 증폭된다고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진 가치가 미술계에 현실적으로 침투되었을때 미술계는 그저 소소하고 미미한 이야기들의 집합체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키치적인 것은 그저 키치였고 문화적 계층을 나누어 하급으로 분류했지만, 현재의 방식은 어떤 장르나 방식 계층도 없이 모두가 자신의 발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대기업과 단단하고 스마트한 스타트업의 대치, 그리고 다시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그것을 가치매겨 빅딜로 소유하기도 하는 구조가 순환되는 흐름이다. 이러한 언급을 하는 이유는 아드리안 게니가 영웅과 독식의 주인공을 해체시킨다는 느낌을 주기때문이다. 작품을 보고 있자면 고흐의 자화상이나 최근에 상당한 인기를 얻는 아티스트 마를렌뒤마스 그리고 그의 회화의 원류였던 독재와 정치인들.. 게다가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까지 우뚝선 독단과 독선의 주인공을 회화적 제스쳐로 흠씬 두들겨패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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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rian Ghenie, Untitled (2019). Ghenie
self portrait by iphone (2014) ghenie

뉴욕양키스 모자와 저지를 입은 듯한 self portrait는 자신이 양키스를 좋아하고 아이폰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추측된다. 미국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던 루마니아 공산주의와 독재정권 아래에 살던 작가가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자아비판하거나 현실의 실제모습이 아이러니를 낳고 있어 자화상으로 명명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루마니아 혁명시기에 여러표어중 하나였던 '영웅은 절대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비웃듯이 이처럼 그는 역사속의 인물과 실제 현대에서 현대적 독재를 행하는 모두를 회화적 액션으로 끌어내린다. 뒤샹을 위시한 다다이즘은 전통적 예술의 죽음을 고했는데, 제1회 국제 다다페어의 작품을 패러디해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의 물감을 가득 칠해 놓은 부분등도 흥미롭다. 실제로 작가는 커다란 회화를 제작할 때 일회용 접시들에 물감을 실어서 커다란 캔버스 표면에 접시를 강하게 던지는 행위로 회화적 흔적을 쌓기도 한다.

Dada Is Dead (Study), 2009 - Adrian Ghenie

던지는 행위 뿌리는 행위 비비고 쌓고 거친 붓으로 문지르고 긁어대는 수많은 표현적 행위들, 실제공간에서 마주하면 꽤나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행위들을 붓으로 물감으로 표현해낸 결과물은 비극적이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회화적 층들이 생긴 결과 그로테스크한 형태들이 나오는데 혹자들은 불쾌하고 어두워 좋지않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소름과 비장한 멋 그리고 억압에서 이끌어낸 분노 등의 감정적인 지점을 건드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충분히 아름다운 작품들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타작가들처럼 게니의 작품 모두가 수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폭력적 혹은 분노표출적 행위의 붓질들로 엉성하게 짜여진 작품들도 간혹 보인다.

우리시대의 회화는 어디로 가야할까?에대한 끝없는 물음을 하는 본인은 결국 디지털 세상과 그에 따른 새로운 도구와 미디어에 걸맞은 예술이 생길 것이며 전통적으로 물질을 다루는 예술 특히 회화나 조각등의 장르와 디지털에서 비물질로 이루어진 가상 세계의 장르는 누가 기득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 하며 향후 20년은 보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질문과 혼돈의 예술시대에 아드리안 게니라는 작가를 보면 그 행태는 기이해보이고 특이하지만 전통을 고수하며 새로운 표현의 경지를 선보여, 이 시대에도 전통적인 회화를 고수하는 작가들이 목표로 하는 뉴미디어예술시대의 틈을 파고드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어두운 풍자와 표현주의적 성향의 회화는 또 어디로 흐를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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