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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클라스/Re전시정보요약

[전시종료]<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by 클래스는 영원하다 202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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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광화문 600년;세 가지 이야기<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광화문>
전시장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기간: 2021/12/17(금)-2022/03/31(목)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10:00-18:00(관람종료30분전까지 입장가능)

전시를 열며
오늘날 광화문 거리는 경복궁 남쪽에 위치한 정문에서 세종로 사거리에 이르는 넓은 길과 주변 일대를 가리킵니다. 특히 '육조거리'라 하여 조선시대에 여섯 개의 중앙 관청이 배치되어 있던 광화문 거리는 많은 변화 속에서도 현재까지 국가의 상징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 광화문 일대가 크게 바뀐 것은 1960-1980년대입니다. 1960년대부터 도심재개발과 강남 개발에 따른 대규모시설이전, 서울올림픽대회 개최에 따른 정비를 계기로 도로가 확장되고, 고층 건물들이 건설되면서 점차 현대적인 도시 공간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광화문 거리에는 조선왕조의 중심이었다는 역사성과 대한민국 정치.행정.외교의 중심이라는 정치적 상징성, 그리고 시민의 문화활동과 집단적 의사표현이 이루어지는 군중집회 현장이라는 공공성이 혼재되어 왔습니다. 이런 점에 서 광화문거리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성격을 지닌 역사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은 '광화문 600년;세 가지 이야기'라는 주제로 광화문 일대의 역사. 문화를 탐색하는 특별전을 연이어 마련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공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광화문>은 그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표적 상징공간인 광화문 거리가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현장이었음을 재발견하고, 공간 변천에 따라 한국인들의 기억에 각인된 다양한 의미를 되새겨 광화문 공간의 미래를 전망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부 다시찾은 광화문
1910년 강제병합 이후 일제는 식민 지배를 위해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광화문을 해체하여 경복궁 동문 북쪽으로 강제 이전시켰고, 이 거리를 ‘광화문통’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세종로 사거리에서 태평로로 연결되는 길에 식민지 통치기관이 집결되면서 광화문은 식민 권력의 상징거리가 되었습니다.
광복과 더불어 광화문 거리가 우리의 공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거치면서도 일제에 의해 연출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6·25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고도 한동안 제대로 된 재건 작업조차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광화문 거리는 4·19 혁명을 기점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열망을 담아내는 광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2부 광화문 거리의 개발과 건설
1960년대에 광화문 일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현대적 경관이 연출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현대식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는 가운데 5·16 군사정변 후 수립된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세종로에 국가 행정기관을 밀집시켰습니다. 세종로의 도로폭이 확장되고, 지하보도와 육교가 건설되면서 광화문 거리는 점차 자동차 중심의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종로는 권위주의 권력의 전시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여 국군의 날 퍼레이드와 같은 공식적이고 엄숙한 행사 현장으로 활용하였습니다. 또한 정치적 안정과 국민 통합을 위해 세종로 경관에 전통적 요소를 동원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중반 경 세종로 주변에는 경제성장과 맞물려 소비와 유행으로 활기를 띤 번화가가 형성되었습니다.

3부 광화문 거리의 현대적 재구성
1960년대까지 해외 언론에 비친 수도 서울은 초라했습니다. 정부는 서울을 그 어떤 외국 수도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말쑥한 도시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은 서울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회적 공포감을 증폭시켰습니다. 1970년대 유신체제 아래 남북한 체제 경쟁 분위기 속에서 강남 개발과 함께 강북 도심재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물리적 도시경관은 정부가 치적을 드러내고 선전하기 좋은 도구이자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드러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었습니다.
1980년대 올림픽 유치는 도심부 전면 재개발과 함께 광화문 거리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부 주도로 세계적 선진 도시에 어울리는 도심부 스카이라인을 형성 하기 위한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광화문 일대의 오래된 주택과 식당, 명문 학교와 학원, 출판사와 서점, 중소형 건물 상당수가 강남 및 주변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고, 그 자리에는 중대형 고층건물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광화문 거리의 현대적 공간 구조는 대부분 1970~80년대에 확정되었습니다.

4부 광화문 공간의 전환
1987년 6월 민주항쟁, 1988년 서울올림픽대 회 개최, 1993년 문민정부 출범, 1995년 본격 적인 지방자치제도 실시 등의 사회 변화는 광화 문 일대 공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구 조선총독부 청사가 철거되고, 광화문이 다시 복 원 되었으며, 세종로가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상 징공간으로 정비되었습니다. 또한 세종로 사거 리에 지하철역이 들어섰고, 1960년대 이후 자 동차 중심 거리였던 광화문 일대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었습니다.
민주화 이후 광화문 일대에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 습니다. 이에 1998년 공원 형태의 시민열린마 당이 개장되었습니다. 이후 광화문 일대는 월드 컵 응원과 같은 국민적 축제를 함께 즐기는 무대 로,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정치적 시위의 장 으로 활용되면서 오랫동안 억눌렸던 시민들이 소통하는 장으로 특유의 활력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광화문광장이 조성되어 국민에게 개방되었습니다. 현재 광화문광장은 ‘사람이 쉬고 걷기 편한 광장’으로 재구조화 작 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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