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랑주 포인트
Lagrangian Point
박석민·지근욱
2022.12.29(목) - 2023.01.23(토)
지근욱 작가의 개인전 <잔상의 간격>(2021)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작업 과정에서 길을 잃거나 실수에 직면할 경우 어떻게 해결하는가. 작가와 멀지 않은 관계였기에 즉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점 이후 다양한 변수들과 조우해가며 결과에 도달하는 나로서 그의 대답은 어떤 이유에서 흥미로웠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Ted Chiang)라는 SF소설의 한 부분이 직관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소설에 시작점과 도착점 사이의 빛의 이동경로 그리고 빛 스스로의 의지에 관한 설명들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내게 매 순간의 가능성을 돌파해나가는 어느 화가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두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이와 s 혹은 w의 궤적을 그리며 결과에 도달하는 또 다른 이. 정반대의 경로를 짚어 나가는 두 사람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소설을 함께 읽은 후 1년간 나누었던 언어, 그림, 의지와 결과물, 시작점과 도착점 사이의 확정적/ 불확정적 경로에 관한 대화들로 전시의 실마리가 구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두 작가의 비교/ 대립항으로부터 작가와 작품 간의 관계는 필연적인가 하는 또 다른 문제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각자의 작업을 재정립하는 시기를 맞이하며, 그간의 대화들은 연대와 탈주에 관한 어떤 쌍곡선을 그리게 될까.
현재'라는 미지의 대상에 접근하고자 사유를 향한 '바라보기'의 형식을 제안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것은 그림과 감상자 사이에 일종의 비물질적인 커튼을 설정, 세계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태도이다. 최근 회화의 정서와 불협화음을 내는 대상들을 다루며 감상자의 움직임을 발생시키는 일련의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각자가 속도를 달리하는 회화적 사건들과 제어되지 않은 무의식의 접점을 가시화하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예술의 재정의에 관한 필요가 가속화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들과 접촉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내가 작업에서 다루고 있는 기화된 경험의 세계는 지근욱 작가의 화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경험적 우주와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시선과 대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망막의 이슈를 확장하려 한다는 점에서 명확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접근하는 통로를 전시/전시공간의 동(사)적 맥락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함께 고민했다. 1mm가 채 되지 않는 두께의 얼룩들이 지시하는 바라보기의 조건들이 정신적/육체적 태도에 관한 현재적인 질문들로 수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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