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시테 섬 동쪽에 있는 가톨릭 성당으로, 파리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14세기에 완공된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이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과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틀담의 꼽추)의 무대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에도 파리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이다. 다만 단독등재는 아니고, 파리의 센 강변이라 하여 센 강 일대의 자연환경 및 그 주변 문화유산인 에펠 탑, 루브르 박물관, 앵발리드 등과 묶여서 지정되었다.

지금의 대성당이 있던 곳에는 성 스테파노에게 봉헌한 작은 성당이 있었지만, 1160년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 1110 ~ 1196) 주교는 보다 더 큰 규모의 성당을 짓기 위해 파리대교구에 착좌하자마자 옛 성당을 가차없이 부수고 주변의 몇몇 가옥들도 함께 철거했다. 그리고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초석을 놓으면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곳은 후진과 성가대석으로 1182년에 완공되었으나, 전체 공정의 절반도 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가 시작된 지 33년 후인 1196년 9월 11일 모리스 드 쉴리 주교가 사망했다. 대성당의 서쪽 정면은 1200년경~1225년에 완성되었고, 서쪽 정면의 탑 2개와 북쪽의 장미창은 1250년에 마무리되었으며, 나머지 부분에 대한 공사는 1250년부터 약 1세기 동안 진행되어 마침내 착공 183년 만인 1345년에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백년전쟁의 와중인 1431년 영국의 왕 헨리 6세가 이곳에서 프랑스 왕으로 즉위식을 거행했으나 당시 파리 시민들이 잔 다르크를 적으로 여겨 싸웠을 만큼 영국에 우호적이었음에도 그들의 반발을 불렀다.1456년에는 이 곳에서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재판을 교황청이 열어서 1431년 영국 측과 친영국파 프랑스 성직자들이 벌였던 종교재판으로 화형당한 잔 다르크의 이단 판결과 마녀 혐의를 무효화하여 복권했다. 그래서 잔 다르크 성녀의 성상이 이 성당 안에 있다.
18세기에는 성당이 어둡다는 이유로 성직자들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일반 유리로 바꾸고 그로테스크한 가고일 상을 제거하는 등 신고전주의적인 취향에 따라 손을 보았다.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자 귀족문화, 종교문화 자체를 증오하는 시민들에게 에마뉘엘 이라는 종을 제외한 모든 종이 녹여지고, '옛 프랑스 왕으로 오인된' 성경 속의 왕의 조각이 목이 잘리는 등 각종 조각이 훼손되고 이신론자들의 신전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전근대 사회에선 이 성당이 프랑스의 기득권 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직자는 프랑스 귀족 계층에서 배출되었으며, 프랑스 귀족과 기득권층의 법률적 옹호기관인 고등법원의 관료 역시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직자들과 혈연관계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때문에 이 대성당이 프랑스 혁명 당시 가장 먼저 공격을 받고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1804년 12월 2일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하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황제 대관식을 이 성당에서 치렀는데, 이를 위해 대성당의 주변 건물을 철거하는 등 많은 정비를 하였다. 성당의 입구에는 신 고딕식의 나무 문을, 실내는 신고전주의 건축처럼 보이게 장식하였으나, 임시로 덧댄 것들이라 오늘날에는 남아있지 않다(대관식에 대해서는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참조)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내부가 외양간으로 쓰여지는 등 성당의 사회적 가치는 심하게 손상되었다. 결국 파리시 당국은 성당의 철거까지 검토하였는데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빅토르 위고가 성당의 훼손, 파괴를 막으려고 쓴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이 인기를 끌면서 평가도 좋아졌으며, 건축가인 장바티스트 라쉬(Jean-Baptiste Lassus)와 외젠 비올레르뒤크(Eugène Viollet-le-Duc)에 의해 1845년부터 근 20여년 동안 복원에 들어간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성상들, 중앙 첨탑(flèche)등이 이 시기에 복원되었다. 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시기에 만들어진 많은 것들은 뒤크의 취향에 따른 창작에 가깝다.

이후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양차대전을 겪으면서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2019년 4월 15일 원인 불명의 화재로 인해 13세기로부터 내려오던 목조 지붕과 19세기에 만들어진 중앙 첨탑이 소실되고 석조 볼트가 일부 파손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었다.
화재 그리고 원인?
발화 추정 시각은 (프랑스 기준) 2019년 4월 15일 18시 50분 경이다. 한국 시간으로는 2019년 4월 16일 오전(새벽) 2시이다. 유튜브에서 화재가 일어난 성당의 모습을 실시간 중계했고 화재를 진압한 뒤 성당의 모습도 한동안 중계했다.
CNN 뉴스에 따르면 이미 노트르담 성당의 중심 부분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종탑 부분의 최고 높이가 69미터였으니 아마 진화반이 접근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한국 시간 새벽 5시 경에는 프랑스 내무부 공식 발언으로 '노트르담 대성당 진화 불가능할 수도'라는 말이 나왔다.
대성당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과 같아서 내부에 문화재가 많았다. 프랑스 측은 예수의 가시관 등 옮기기 용이한 것들은 화재 당시 이미 안전한 곳으로 옮겼고 현대식 화재 진압법으로는 자칫 성당 전체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첨탑 및 지붕은 불가피하게 포기하고 성당 내의 다른 문화재들을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단 기본 골조, 성당의 상징과 같은 전면 탑 2개는 살리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관련 기사 프랑스 현지 시간 기준 밤 11시 28분경 프랑스 경찰이 '화재가 북쪽 탑으로 번지는 것은 막았으며, 성당의 기본 구조는 보존되었다고 봐도 좋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프랑스 내무부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희망적"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 현지 시각 4월 16일 오전 4시를 기해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일단 첨탑 보수 공사를 위해 세운 비계(飛階)에서 화재가 처음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것이 인재인지 자연재해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봄철 건조한 날씨 때문에 화재가 쉽게 날 수 있음을 감안해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8년에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몰려 있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유지보수가 매우 중요하여 프랑스 정부도 관련 예산을 집행하고 지원금 모금도 받는 등 수리를 진행했다. 화재 당시에는 한화 약 77억원을 들여 첨탑을 수리하고 있었다.
한편 프랑스 소셜미디어에서 이 화재의 원인이 프랑스 내 이슬람 세력이 테러를 감행하기 위해서 방화를 했다거나 난민으로 보이는 중동계 청소년들이 방화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설이 떠돌기도 했다. 실제로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모여서 난민들이 여러 번 대규모 시위를 한 적도 있고 1명이 사살된 적이 있으나 이런 설들은 그저 낭설일 뿐이다.매년 4월이면 파리 시내에 노숙자가 증가하면서 거리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기 때문에 화재 원인에 대한 프랑스 당국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낭설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또 이 사건은 노란 조끼 운동으로 대변되는 지지율 하락으로 위기에 빠진 마크롱 정권에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있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어 화재 원인을 조사했다. 설치된 전기시설에 의해 불이 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화재 전에는 전원이 정상적으로 차단된 상태였다고 한다.
한편 첫 화재 경보기 알람이 울렸지만 즉각적인 소방 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초동진압 시기를 놓쳤고 그로 인하여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는 분석도 있다.
2019년 5월 15일에 올라온 기사에 의하면 지붕 쪽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이고 화재가 발생한 곳이 어딘지는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하며 방화는 아닌 것 같다고 한다
https://youtu.be/CnNB732aFwI?si=FxbM6GsYqU7gUKrB
복원 과정
당시 탈출한 시민의 인터뷰에 따르면 일단 인명 피해는 없는 듯하다.
지붕이 완전히 붕괴했으며 첨탑도 무너져 건물 골조만 남아 버렸다. 관련 기사 지붕 부분이 모두 전소되어 보수공사용 비계와 함께 무너졌다.
영국 가디언지에서 기사를 내보냈다. 성당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이유는 불길이 첨탑과 지붕, 위쪽의 장미창 등을 불태웠으나 아래의 석조 구조물까지 본격적으로 번지기 전에 막은 것 덕분이다. 때문에 석조 구조는 멀쩡하고 목재 구조는 남김없이 전소했다고 한다. 문화사적으로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목조 천장 구조가 소실된 것은 특히 뼈 아픈 손실이다. 목조 건축은 재료의 특성상 보존이 쉽지 않기 때문에 현대까지 잘 남은 중세의 목조 구조물들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목조 지붕 아래에 석조 아치형 천장이 또 있는 고딕 양식 특유의 건축구조가 성당 내부가 파괴되는 것을 막은 듯하다. 이 구조가 아니었다면 목조 지붕이 소실되면서 성당 내부까지 화마가 번졌을 것이다.
또 불행 중 다행히도 12사도상을 비롯한 석상, 동상 등 일부 문화재는 보수공사를 이유로 화재 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화재 진압 직후 찍은 동영상에서 벽제대와 피에타상, 그리고 마치 전혀 연기에 그을리지 않은 듯한 제대 십자가가 나왔다. 제대는 가톨릭에서 예수를 상징하거니와 성당의 중심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신자들은 기적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영상 때마침 이 사건이 사순 시기의 마지막 주간이요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둔 때, 곧,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기리는 성주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신자들은 이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했다.
재건 방식을 둘러싸고 원래의 디자인과 재료, 전통적인 건축기술을 토대로 원형 그대로 복원해 문화유산의 역사성을 살릴지, 아니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건축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뜨거워졌다. 다만 현대 건축가들이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홍보하기 위해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옥상에 풀장을 만들자는 등 다소 무리한 계획안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는 점, 노트르담 대성당을 멋대로 복원하면 정치가들이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진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형에서 동떨어진 복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었다. 2019년 7월 16일 프랑스 의회는 성당을 '화재 직전 있던 모습 그대로' 재건하도록 요구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한편 이 화재로 뜻밖의 환경오염도 발생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지붕은 납 210톤을 사용하여 덮었는데 화재로 납이 증발해서 주변으로 퍼진 것.프랑스 당국은 성당 주변 장소를 폐쇄하고 성당 인근에서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였다. 이 때문에 환경 단체에서 파리 등에 형사소송을 걸기도 했다. "납 300t 녹아내려" ’노트르담 성당 복구 중단..소송전까지‘성당이 타 버리기 전에는 관광객들이 '물렁한' 납 지붕을 긁어서 많이 낙서했다.
2021년까지 보수공사를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해졌다.
불행히도 내부의 구조가 생각보다 매우 취약해졌고 더욱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이곳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진 터라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보수공사 때까지 버텨 줄지 심히 의문스럽다는 말이 나왔다.
첨탑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https://www.bbc.com/ws/av-embeds/articles/cr5mgl5e7g2o/p0k7pnv3/ko
참혹한 화재 이후 5년 반 만에 재개관하는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참혹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던 프랑스 파리의 상징물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오랜 복구작업 끝에 오는 12월 7일,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된다.
www.bbc.com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 내에 현대식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에 반발 여론이 나타났고, 결국 원형을 유지하기로 결정되었다.
2024년 5년만의 복원과 재개관
2024년 11월 원형 그대로 복구하는 데에 성공해 12월 7일 공식적으로 재개관 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화재 발생으로부터 5년여만인 2024년 12월 7일(토요일), 공식적으로 재개관 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 등도 참석하였다. 당초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정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초청했지만, 바티칸측은 "행사의 주인공은 교황이 아니라 노트르담 대성당이어야 한다"며 사양했다. 대신 "그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시고, 그들을 관대하게 환영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화재 당시 화마에 맞서 싸운 소방관 160명이 성당 내부를 행진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대성당 밖 벽에는 '감사'를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가 표시되기도 했다. 성당 주변에 약 4천명의 시민이 모여 외부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으로 기념식을 지켜봤다.
유명인사들의 참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영국에서는 윌리엄 왕세자가 대표로 참석했다. 암 투병 중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은 오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참석했다. 그는 이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트럼프 당선인과 3자 회동을 갖기도 했다. 지난 9월 뉴욕에서 만난지 약 3개월 만이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로베르타 메솔라 유럽의회 의장,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 등도 모습을 드러냈다.
https://youtu.be/9bkm6ioOHMU?si=i_3Kq-wM3sazKwhT
다음날인 12월 8일(일요일)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재개장 후 처음으로 주일 미사가 치러졌다. 이날은 가톨릭 전례력에서 '성모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 대축일'이며, 노트르담 대성당의 이름이 성모 마리아에서 유래한 것을 반영한 날짜 선정으로 풀이된다
https://youtu.be/nNiHBI1d31s?si=njDFlW_6Cw_Cq9JF
노트르담 재개관에 대한 여러 사안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정부의 관리 등을 생각해보면,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갖고 그것을 주제로 스토리텔링을 하는등 유산에 대한 역사와 정신적 가치를 두는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것이 복원되고 건축되는 역사적 반복에 의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그것을 찾게 만드는 힘을 갖는 것으로 생각한다. 루브르박물관 관람을 위해 전세계인이 여름휴가계획을 짜는 것처럼 그들은 문화를 어떻게 포장하고 광고하는지 잘안다. 그 안에는 자기나라의 미술품도 아닌 약탈문화재도 많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도 케이문화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고 그 바탕에는 문화를 사랑하는 진실된 마음과 그 습관등이 바탕해야할 것이다. 애정과 가치를 높게사는 그 마음씀씀이는 결국 태도로 나타날 것이며 문화란 그런 마음과 태도에서 비롯되는것으로생각한다.
본 문서는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연합뉴스 조선일보등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Art 클라스 > Art 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이비드 린치 감독 투병끝 78세로 사망 (1) | 2025.01.17 |
---|---|
2024 부산국제아트페어 (1) | 2024.12.03 |
퐁피두센터와 퐁피두 서울관 (1) | 2024.11.26 |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또다른 쾌거 (0) | 2024.11.19 |
<2023 BAMA 제12회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EXCO (0) | 2023.03.02 |
댓글